한국을 떠나며...(라오스 임태혁,조윤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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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태혁 작성일 09-09-13 20:09본문
한국을 떠나며....(200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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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일 줄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이었고, 두어 차례 미루어진 것이라 어서 빨리 갈 수 있기를 갈망하였던 일인데, 막상 선교지를 향하여 떠나려니 기쁨과 설레임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많으니 말입니다.
지난 며칠간 짐을 꾸려서 선편으로 보내고, 손으로 들고 갈 짐들을 꾸리면서 삶의 흔적들을 하나 하나 챙기면서 들었던 많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들에 어찌 그렇게 애착이 가는지....
내가 살아가는 데에 왜 그렇게 자질 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필요한 것인지....
만나야할 사람, 인사하고 가야할 사람, 매듭을 짓고 또, 풀고 가야할 일들이 참 많다는 것들....
내가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들이 진심이었는지....
그렇게 삶의 흔적들을 챙기고, 또 떠나보내고.
가족과 친척들과 이러 저러한 사람들과 아쉬워하기도 하고, 눈물 짓기도 하고.
나를 붙잡아 매고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매듭 짓고, 또 풀기도 하고...
오늘 2009년 8월 25일 태국 북부 치앙마이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5식구가 겨우 가방 10개에 의지해서 선교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지난 2008년 가을.
전국을 순회하면서 교회들을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라0스 선교를 향한 후원을 모금하고.
2009년 1월부터 선교본부에서 KMTI 훈련과 여러 가지 일들을 돕고, 또 상담을 비롯한 몇 가지 훈련을 더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왜 빨리 나갈 수 없는 걸까 하고 답답해하기만 했던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많은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장 큰 것은 저희 부부가 더 견고해지고, 더 사랑하게 되었으며,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교 본부의 멤버케어를 받으며 돌덩이같이 굳어있었고, 잊고 살았던 서로의 아픔들을 발견하고 서로 어루만져주면서, 더 아껴주고, 더 품어 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다음은 평생 술과 노동과 종손으로서의 삶과 질고의 생을 사셨던 아버지께서 지난 5월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선교에 헌신하면서, 선교지로 가기 전에 가족 구원, 아니
가족의 종교의 자유라도 허락해 달라고 애원했던 저의 기도를 몇 갑절로 채워주신 것입니다.
엊그제 한국에서의 마지막 주일, 부모님이 나가시는 교회의 설교요청을 받고 저녁 예배 설교를 할 때 아버지께서 아들이 목사가 되어 설교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셨습니다.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부족한 설교에도 200명 정도의 성도들이 “아멘, 아멘”하며 은혜를 많이 받던데... 아버지의 마음이 나쁘지는 않으셨을 거라고 굳게 믿어 봅니다.
그리고, 약 3개월 정도 대전 선교부 안식관이 있는 아파트 옆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축구교실을 성공적으로 한 것도 큰 소득이자 훈련이었습니다. 30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축구교실에 나왔고, 학부모들이 큰 호응을 가지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18일 마지막 모임에는 그 아이들에게 글없는 그림책으로 전도를 하고, 잠시 몸담았던 송촌 장로교회 주일학교에 몇 명의 아이들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은혜와 축복이 있었지만 일일이 다 기록하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30대 후반의 막내 처제가 5월에 결혼을 한 것이나, 서른넷의 막내 동생이 9월 12일에 결혼을 하는 것 등은 2년 전 선교사로 헌신하면서 꼭 들어주시기를 요청한 기도제목인데 들어주셨습니다. 게다가, 그 처제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출국하는 저희에게 오늘 전해주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는 오늘,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선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하는 것을 보며 우리도 출국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도 많이 있습니다.
먼저는 나 자신이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더욱 많이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교만해지고, 쉽게 좌절하고... 그것을 이기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깊이가 너무나 얄팍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공항에서 장인어른 되신 조긍천 목사님이, 앞으로의 모든 선교를 무릎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하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참으로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둘째는 언어훈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올해 저의 나이 마흔셋, 아내는 마흔입니다.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닌데... 돌이 변하여 컴퓨터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2년동안 태국어를 치앙마이에서 배우고(마스터하고?) 온가족이 라0스로 들어가 라0스어를 6개월에서 1년동안 할 예정입니다.
셋째는 자녀교육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입니다.
워낙 붙임성도 좋고 운동신경도 뛰어난(특히, 축구와 달리기) 세 아이(성균,도균,향기)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영어가 거의 안 되고, 2년 후에 또다시 라0스로 가야하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에 특별한 기도의 지원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자녀교육비는 큰 짐입니다.
선교부에 책정되어 있는 자녀교육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에 매월 100만원 가량 부족한 교육비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저 하나님이 보내셨으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태국에서는 지난달 7월16일 통계로 신종플루로 47명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국, 라0스는 워낙 더운 지역이고, 습하고, 모기도 많아서 여러 풍토병(특히, 말라리아와 댕기열병)이 염려가 됩니다. 육체적으로 어려움 없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저희가 2년 정도 지내게 될 치앙마이에는 선배 선교사님들이 몇 가정 살고 계십니다. 미얀마 사역과 태국 산지 사역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각자 사역은 다르지만 선교사님들 간에 매주 정기적인 기도모임도 있고, 분위기가 서로 아껴주고 기도해 주는 좋은 분위기입니다. 이런 곳에 처음 정착하는 것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항에는 처가 가족들, 친가 가족들, 그리고 지난 11년간 사역했던 경기 인천지역 SFC 간사님들, 아들 딸과 같은 제자들 등 30명 가량이 나와서 배웅을 하였습니다. 두 어머님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이국땅에서 살아갈 자녀들 걱정으로 말문을 잘 못 여셨습니다.
양가의 두 부모님께 머리 숙여 깊이 인사를 드리는데, 참을 수 없이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교회에 잘 나가셔야 한다고 아버지께 당부를 하는 데, 씩씩하게 그러겠노라고 대답해 주시는 아버지가 너무 고마웠고, 또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타러 갈려면 얼마나 남았냐고 수속하기 1시간도 훨씬 전부터 귀찮게 하면서도, 비행기를 타면 잠잘 것 같다고 걱정을 하던 아이들이 기내식이 나오자 “너무 맛있어서 잠이 안온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짐을 꾸리고 이것 저것 챙기고 정리하던 아내는 벌~써 막내 향기와 같이 곯아 떨어졌습니다. 치앙마이의 밤공기가 우리를 반겨줄 것입니다.
글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활동사진의 몇 장면들처럼말입니다.
어린 시절 사진 몇 장, 중고등학교 시절 몇 장, 대학시절 몇 장, 예수를 믿고 자라게 해 준 SFC 활동 몇 장,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핍박당하던 시절 몇 장, 그 동안 사역했던 남서울교회, 새수원제일교회, 말씀전원교회, 향상교회, 주님의 교회와 함께 했던 사진들 몇장, 그리고 SFC 간사로 섬기며 행복했던 사진들 몇 장입니다.
아.... 보입니다. 늘 곁에서 함께하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랑하는 아내 조윤현 선교사와 우리 아이들 셋이 태어나며 자랐던 사진들이요....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이제부터 어떻게 사용하실까요?
걱정되고 두려운 것도 있지만, 정말 기대가 되고 설레이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일했던 40년, 세계에서 일할 40년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와 열방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같은 마음 품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치앙마이로 가는 창공에서 임태혁 선교사 드림 (대한항공 KE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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